본문 바로가기

자유게시판

"하나님의교회,,"청년이여 우리가 할일은"

"하나님의교회는 어머니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전파하는 새벽이슬들인 청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서 청년의 기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새벽이슬 청년들이 있는 하나님의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청년이여 우리가 할일은"





인생을 꽃이나 나무로 비유한다면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모습을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청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푸른 하늘을 향하여 한껏 피어나서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꽃을 바라보노라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아름다운 대화가 노래되어 나오는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꽃은 누가 봐주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울창한 숲을 바라보십시오. 그 중에 어느 한 나무일지라도 싱싱한 푸르름은 넘쳐나고 무언의 자신감과 웅장한 자태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 아닙니까?

 

‘푸른 나이 때!!’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하였으며 시편 기자를 통해서는 영롱한 빛을 발하는 「새벽이슬」로 비유하지 않았습니까?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4)라고 기록하여 청년의 때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새벽이슬들은 멜기세덱의 청년들이며 새벽 이슬은 하늘의 보물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신 33:13). 얼마나 값지고 귀한 존재이길래 보물이라고 표현하셨겠는가?

다윗이 가졌던 강렬한 투지와 용기, 그리고 포로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았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믿음, 한번 세운 믿음을 죽기까지 굽히지 아니한 바울, 돌을 맞아 운명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담았던 청년 스데반. 이들은 모두 청년기에 그리스도의 짙은 향기를 뿜어낼 수 있었던 ‘새벽이슬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형제· 자매들이여!! 아버지께서 청년의 때를 따로 정하시고 새벽이슬로 표현하신 뜻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을 더욱 사랑하심이 아니겠습니까?

강렬한 투지와 용기! 불굴의 신념과 믿음!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발랄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심! 건강! 정열! 패기!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청년만의 보배가 아닐까요?

 

장구한 인류사를 통하여 구속의 경륜을 전개해 오신 아버지께서 “경”의 기록을 통하여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 선지자들의 특징을 표본으로 보여 주심은 지상복음의 마지막 단계인 지금에 와서도 이와 같은 요소로 짜여진 병기로 마지막 승리를 장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들이 하나님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거나 겉모습은 청년일지라도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청년답지 못하다면 과연 제 맛을 낼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소금의 맛을 냈을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듯이 청년은 청년으로서의 맛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유용한 그릇으로 쓰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나무로 비유하시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과일나무는 과일을 많이 맺히는 것이 본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를 따라 열매를 맺혀야 할 가을나무가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면 과연 주인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거짓 선지자를 ‘열매 없는 가을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매를 수확할 가을이 되었어도 영생에 이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것으로 풍부하게 갖추었다 할지라도 적기(適期)에 맞추지 못하여 때를 놓치거나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가을에 가서야 열매를 맺겠다고 서둘러도 때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 내내 계속 튼튼하게 자라야만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이여!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꽃은 시들기 마련입니다. 세월은 너무 빨리 날아갑니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청년기는 6천년 구원의 역사 중에 지상복음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때를 맞추어 주신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때는 우리의 나태함과 안일함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은 그들이 가야 할 목적과 방향을, 잠시 있다가 없어질 죄악으로 썩어진 토양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하늘 소망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는 시온의 대로가 열려있지 않습니까? 이제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 앞장서 달려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옳은 길로 인도되지 않겠습니까?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서도 “시작은 위대한 것이다.” 라는 교훈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제 청년 여러분에게만 허락된 축복 “푸른 나이때”를 열어가십시오 하늘의 보화와 같은 새벽이슬로 열매를 풍성하게 결실하는 나무가 되기 위하여 지금 이 시간 위대한 시작으로 영원까지 이어가시기 바랍니다.